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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SOS어린이마을 역사

1963년 “쌀 한 톨의 기적”

하 마리아(Maria Hessenberger/ 오스트리아)여사는 구두닦이 소년들을 모아 근로소년단을 조직하여 생활하였습니다. 1962년 하 마리아 여사는 우연한 인연으로 SOS어린이마을 창설자인 헤르만 그마이너 박사를 만나 한국에 SOS어린이마을 설립을 요청하였습니다. 1963년 헤르만 그마이너는 SOS어린이마을 설립을 위해 한국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에 착안, 구두닦이 소년에게 부탁해 한줌씩 모은 쌀 주머니를 오스트리아로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유럽 각국에서 “쌀 한 톨에 1달러를 기부하면 한국의 어린이를 도울 수 있다” 는 캠페인을 진행하였습니다.

이 캠페인은 엄청난 호응을 얻어 큰 기금이 마련되었고 비유럽 국가 최초로 1963년 한국에 SOS어린이마을이 설립되었습니다. 이후 전 세계로 SOS어린이마을이 급속도로 전파되어 오늘날 134개국에서 국경, 인종, 종교를 초월한 아동복지시설로 성장하였습니다.

1965년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사랑의 가정이 세워지다

하 마리아 여사가 초대 원장으로 취임하였고, 이 프란치스카(Franziska Lemayer)여사, 진루이세(Luise Sinnhuber)여사가 함께 대구 동구에 SOS어린이마을 집을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1965년 대구 동구 검사동에 15채의 SOS집이 준공되었습니다. SOS어머니는 독신 여성으로 어린이가 안정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SOS가정을 이끌고, 어린이를 이해하며, 미래를 가꿀 수 있도록 함께 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1968년 2대 원장으로 이 프란치스카 여사가 취임하였습니다.

1980년대 모든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을 위하여
서울SOS어린이마을 설립
1979년 세계 아동의 해 기념사업으로 SOS어린이마을 인터내셔널은 서울에 SOS어린이마을 설립을 결정하였습니다. 이에 헤르만 그마이너가 방한하고 1982년 서울시 신월동에 서울SOS어린이마을 15채의 SOS집과 부속시설인 유아원이 준공하였습니다.
순천SOS어린이마을 설립
1981년 전남 순천의 삼세보육원은 재정상의 어려움으로 국내외 독지가를 물색하던 중 독일 가를로 수녀회의 주선으로 SOS어린이마을 인터내셔널에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당시 헬무트 쿠틴 부총재가 내한하여 삼세보육원에 SOS어린이마을의 모델을 적용하여 한국SOS어린이마을에 가입을 시키고 확정하였습니다. 1982년 10채의 집과 청소년생활관이 준공되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보호체계 확립
1996년 사회에 진출하는 청소년에게 독립된 주거공간을 제공하여, 안정된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검사SOS자립생활관, 삼덕SOS자립생활관을 개관하였습니다. 2004년 위기에 놓인 어린이들을 긴급히 보호하는 SOS아동보호센터가 개관하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는 우리의 어린이
2004년부터 대구, 서울, 순천에 SOS아동복지센터를 개관하여 SOS어린이뿐만 아니라 지역의 어린이에게 방과 후 보호, 급식, 교육 및 체험프로그램을 제공하며 가족역량강화를 위한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2010년부터 빈민국 어린이와 그 가족을 돕기 위한 해외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